버려진 집, 지역을 살리는 거점으로. [오늘의 빈집 연구소]의 목소리

유승균 매거진

버려진 집, 지역을 살리는 거점으로. [오늘의 빈집 연구소]의 목소리

[오늘의 빈집 연구소] 소장 최광운 대표


도시재생 4.0 토론회에서 만난 [오늘의 빈집 연구소]의 목소리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 낡은 건물과 사라져가는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도시재생 4.0’이라는 제목 아래 열린 토론회였지만, 종이에 인쇄된 정책 용어보다 더 생생하게 다가온 건 현장에서 흘러나온 말들이었다.
오늘의 빈집 연구소 소속 대표 네 명은 각자의 경험과 현장을 토대로 빈집을 바라봤다. 목소리의 색깔은 달랐지만, 모두가 공통으로 말한 것은 하나였다. “빈집은 흉물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나이가 아니라 콘텐츠의 질로 평가해야 합니다” – 최광운 대표

최광운 대표는 먼저 세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꺼냈다.

“청년 제도는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40대, 50대 중장년층을 위한 제도는 거의 없죠. 여전히 사회적으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세대인데도 제도의 틀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청년이라고 39세 선을 긋고, 어떤 지역은 45세까지라고 하고… 이런 기준은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콘텐츠의 질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갖고 있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해요. 콘텐츠가 훌륭하다면 누구든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 이야기도 이어졌다. 현재 운영되는 많은 교육과정이 민간 협회 중심으로 자격증 발급에 치중되어 있고, 정작 현장에 나가면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감을 가지고 자격증을 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게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도와 교육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주민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창구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시샘이나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원을 받는 게 당연해지다 보니 자립적인 구조가 약해지고, 지원센터 직원들조차 소진되곤 합니다. 이제는 ‘지원’이 아니라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그는 활성화의 네 가지 축으로 상권, 문화, 주거환경, 관계를 꼽았다. 특히 “작은 도시일수록 능력보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내려와도 관계망이 없다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도시재생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행정의 차원을 넘어선 깊은 현장 경험에서 나왔다.


“빈집은 청년 창업과 문화 콘텐츠의 거점이 됩니다” – 김현희 대표

공간&터 김현희 대표는 빈집을 ‘다시 써야 할 자원’으로 정의했다.

“문제를 기회로 바꿔야 합니다. 빈집과 유휴공간은 방치하면 흉물이지만, 청년 창업의 거점이 될 수도 있고, 문화 콘텐츠의 무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김 대표는 실제로 지역에서 보고 경험한 사례들을 꺼냈다. 오래된 건물을 카페로 바꿔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빈 창고가 전시장이 되어 청년 예술가들이 작품을 선보이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 공간이 달라지면, 그곳을 찾는 이유가 생깁니다. 결국 사람이 다시 모이고, 관계망이 살아나죠.”

구체적인 협력 모델도 제안했다. 소유주는 자산을 내놓고,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공간을 새롭게 설계하며, 청년 창작자는 문화와 콘텐츠를 채워 넣는다. 그렇게 서로의 역할이 맞물리면 빈집은 지역의 새로운 무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건물을 고치는 건 시작에 불과해요. 중요한 건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느냐, 어떤 사람이 드나들며 관계를 맺느냐입니다. 빈집은 결국 관계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빈집 문제, 데이터와 플랫폼으로 풀어야 합니다” – 최성홍 대표

프로젝트 함양의 최성홍 대표는 조금 더 체계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전국에 130만 호가 넘는 빈집이 있지만, 제대로 된 데이터조차 없습니다.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무엇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은 늘 단발성에 머물죠.”

그는 빈집 정보를 표준화해 ‘전자명함’처럼 관리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빈집마다 디지털 명함을 만들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연결하는 겁니다. 누군가는 귀촌 정착을 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창업이나 관광 사업을 구상할 수 있죠. 이들을 원스톱으로 매칭할 수 있다면 빈집 활용은 훨씬 다양해질 겁니다.”

최 대표가 말하는 ‘빈집 큐레이션 모델’은 단순히 집을 거래하는 차원이 아니다. 빈집을 주거형, 교육형, 관광형, 창업형으로 나누어 큐레이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통영의 빈집이 펜션으로, 산청의 빈집이 청소년 교육 공간으로 바뀌는 식이다.

“빈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사회연대경제와 결합하면 지역경제를 살리는 거점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이걸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산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을 살리고자 하는 열망이 묻어나는 아이디어였다.


“공간이 주는 만족감이 지역을 살립니다” – 성부식 대표

디자인리홈 성부식 대표의 발언은 펜션 운영 경험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이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왔을 때, 만족감을 얻지 못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결국 공간이 주는 즐거움이 핵심입니다. 빈집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는 리모델링을 단순한 건축 행위가 아니라 일자리 산업으로 바라봤다. 철거, 청소, 인테리어, 운영까지 20여 개의 공정이 얽혀 있고, 그 과정마다 인력이 필요하다.

“한 공정마다 한 명씩만 투입해도 15명, 두 명씩만 배치해도 30명이 일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다 지역 일자리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방에서는 집을 고칠 기술 인력을 찾기 어렵다. 수도권에는 인테리어 학원들이 넘쳐나지만, 지역 정착형 학원이나 아카데미는 거의 없다.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도 배울 곳이 없어요. 그래서 결국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인력을 불러와야 하죠. 그럼 비용은 더 오르고, 지역의 자립은 더 멀어집니다.”

성 대표는 이 문제를 풀려면 지역에 리모델링 아카데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사를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온라인 강의든, 현장 실습이든, 지역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일자리와 기술을 연결하는 출발점이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빈집 관리의 핵심은 리모델링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순히 벽을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모으고 지역경제를 순환시키는 더 큰 그림이 있습니다.”


빈집, 위험인가 기회인가

토론회 현장에서 오간 이야기는 길고 다양했지만, 흐름은 하나로 모였다. 빈집은 위험이자 동시에 기회다. 방치되면 지역을 무너뜨리지만, 다시 쓰이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연다.

오늘의 빈집 연구소 소속 네 명의 대표들은 각자의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아니라 콘텐츠의 질로 평가받아야 하고, 빈집은 문화와 창업의 거점이 될 수 있으며, 데이터와 플랫폼을 통해 연결되어야 하고, 공간 만족감과 아카데미가 필요하며, 작은 주체와 관계인구가 지역을 지탱해야 한다는 것.

빈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이 스며 있고, 다시 삶을 불러올 수 있는 무대다.
토론회장을 나서는 발걸음 위로, 이런 질문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빈집을 어떻게 다시 살아 숨 쉬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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